12-27 18:47
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관리 메뉴

헤헤부부의 비밀일기장

고통 중에 자식을 낳겠고 본문

아내 헤르민/자연출산

고통 중에 자식을 낳겠고

hehebubu 2018. 2. 20. 16:09
반응형

2018년 2월 5일 새벽 3시 반, 배를 찌르는 참을 수 없는 통증에 침대에서 일어났다. 진통이 시작됐음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거실로 나와 의자에 쿠션을 대고 앉아 엎드렸다. 7분 간격이었다. 생리통의 열 배쯤 아팠다. 30분 정도 혼자 진통을 하다가 추워서 안방으로 들어가 남편을 깨웠다. 남편이 어플로 진통 간격을 체크하며 등허리 마사지와 심호흡 코치를 해주었다.

5시 반, 조산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상황을 듣더니 아직 한참 남았고 종일 진통할 각오를 하라며, 진통이 3분 간격일 때 다시 전화하라며 본인은 좀 더 자겠다고 하셨다.

진통의 빈도는 5분 간격으로 잦아지고 진통의 정도는 생리통의 천 배로 커졌다. 연습했던 호흡은 잘 안 되고 한 마리의 짐승이 되어 아파트가 떠나가라 비명을 질렀다. 안방, 거실, 화장실을 오가며 누워도 보고 앉아도 보고 욕조에 몸을 담가도 보고 짐볼에 엎드려도 봤지만 진통을 경감하지는 못했고, 그나마 남편의 품에 등을 기댄 자세로 가장 오래 있었던 것 같다. 너무 아파서 남편이 떠주는 물과 죽을 도무지 먹을 수가 없었다. 무통주사가 간절했다.

12시, 조산사가 왔다. 디펜드 기저귀를 찾으시길래 남편이 보여드렸더니 잘못 샀다고 하셨다. 알고 보니 우리가 사놓은 것은 일자형 산모 패드였다. 남편이 급히 마트에 다녀오는 동안 조산사가 내진을 하더니 자궁문이 거의 다 열렸다고 하셨다. 나는 바닥에 누워 조산사의 코치를 따라 항문에 힘을 주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이었다. 남은 힘이 하나도 없는데 자궁이 수축하는 타이밍을 이용해 아기를 밀어내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너무 오래 걸릴 거라고 했다.

12시 반, 남편이 왔다. 디펜드 기저귀를 차고 이번엔 변기에 앉아 힘을 주었다. 중력을 이용하는 방법이었다. 남편의 어깨를 잡고 하는데 나중에 고백하길 가슴털이 뜯어지는 줄 알았단다. 나는 자궁이 뜯어지는 줄 알았다. 진통하는 10시간 내내 아팠지만 이때 최고조에 이르렀던 것 같다. 이러다 죽는 것 아닌가 싶었다. 그러나 피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진통이 올 때마다 있는 힘껏 힘을 주었다. 아기 머리가 다 내려온 게 느껴졌다.

1시, 이번엔 침대에 누웠다. 조산사가 비닐도 깔고 아기를 받을 준비를 다 해놓으신 상태였다. 남편의 무릎을 베고 남편의 허리를 잡고 누워 다리를 세우고 힘 주기를 다시 시작했다. 자궁문도 다 열렸고 양수도 터뜨렸고, 마지막 관문 질만 통과하면 되었다. 땀이 비 오듯 흘렀다. 항문이 터질 것 같았다. 긴장이 되니까 다리가 덜덜 떨리고 숨을 멈추게 되더라. 그러나 아기를 위해서 억지로 심호흡을 해야 했다. 간간히 태아 심박수를 듣는데 다행히도 우렁찼다.

1시 반, 회음부를 일부 잘라야겠다고 하셨다. 초산이라 회음부가 도무지 안 늘어난단다. 싫다고 했지만 기어이 절개했고, 피가 솟구치면서 미끄덩 아기가 나왔다. 나오면서 태변을 보았다. 내 배 위에 올려주셨다. 아기는 멈칫하더니 응애응애 울어댔다. 그러나 이 황홀한 순간에 나의 신경은 온통 회음부에 가 있었다. 조산사가 회음부를 꿰매고 있었기 때문에 활활 타는 듯이 아팠다. 열상이 불규칙하고 심하다고 했다. 꿰매는 데만 30분 남짓 걸렸다.

태반을 빼내고, 태맥이 멈춘 지 한참 된 탯줄을 남편이 잘랐다. 머리 둘레, 키, 체중을 재고 발 도장을 찍고 아버지와 캥거루 케어를 하고 어머니의 젖을 빨았다.

정리하면 진통의 원칙은 이랬다. 자궁문이 열리기 전까지는 파도가 와도 힘을 빼고 심호흡을 한다. 자궁문이 거의 다 열린 후에는 변을 보듯 끙하고 항문에 힘을 준다. 그러다 파도가 가면 호흡을 깊게 한다.

결론은 가정출산을 선택하길 잘했다. 어차피 진통 중에 병원이나 조산원에 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집밖으로 한 발짝도 나갈 수 없었다. 마음껏 자세를 취하고 비명을 지르고 옷을 벗을 수 있어서 좋았다. 무엇보다 아기를 의사나 간호사에게 빼앗기지 않고, 태어난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세 식구가 쭈욱 함께했다는 점이 뿌듯하다. 더구나 임신 42주차에 진입한 상황이라 병원에서는 유도 분만을 권유(강요)했을 것이 틀림없다. 남편은 날 매우 자랑스러워하고 사랑스러워한다. 앞으로 자녀들을 낳고 키우는 데 있어서 큰 자산이 될 것 같다.

반응형

'아내 헤르민 > 자연출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동탄 짐보리  (0) 2023.05.21
두 번째 임신-출산-수유  (1) 2020.05.21
산후 조리 삼칠일  (2) 2018.02.20
아기, 집에서 낳을까?  (2) 2018.02.20
자연주의 출산에 대하여  (2) 2018.02.2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