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헤부부의 비밀일기장
대구 동구(1박 2일) 본문
2021. 10. 3. (일) ~ 2021. 10. 4. (월)
2021년 10월 3일 2시 대구에서 남편 회사 동료 결혼식이 있다고 했다. 코로나로 인해서 1년 넘게 지인 결혼식에 불참했던 터였다. 남편은 꽤나 참석하고 싶은 눈치였다. 신랑 신부 둘 다 친분이 깊다고 했다. 대구까지 가려면 3시간이 넘게 걸린다. 오랫동안 차 타는 걸 싫어하는데. 가는 김에 부산에서 바다도 보고 하룻밤 묵고 오자고, 푹 쉬게 해주겠다는 말에 혹했을까. 아이 둘 육아에 너무나 지쳐서 여행이 고팠을까. 아니면 친정 엄마가 가지 말라고 반대를 하니까 오히려 오기가 생겼던 걸까.
나는 원래 여행을 갈 때 그 지역의 놀거리, 먹거리, 볼거리를 미리 다 조사하고 가는 스타일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남편만 믿고 가자. 이 시국에 굳이 대구까지 가자는 걸 보면 뭔가 있나 보지. 어떤 이벤트를 준비했을까. 얼마나 좋은 호텔일까. 내심 기대를 안고 출발을 했고 긴 여정을 시작했다. 거의 고속도로를 달렸고 아이들은 조금 징징대더니 몇 시간을 내리 잤다. 가는 길에 신라스테이 해운대에 예약하려 전화했더니 빈 방이 없단다. 차선책으로 신라스테이 서부산에 전화했더니 여가 문화 포인트로 당일 예약은 불가능하단다. 맙소사.
이제부터 내 몫이었다. 일단 1박 2일간 대구에서 놀까 부산에서 놀까부터 결정해야 했다. 달리는 차 안에서 서우를 안고 급히 폭풍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골치가 아팠다. 언젠가부터 달리는 차 안에서 핸드폰을 하면 머리가 아프더라. 대구에서 부산까지도 꽤 먼 거리였다. 더 이상 귀한 황금 연휴를 차 안에서 보낼 수는 없었다. 대구의 놀거리를 찾아보았다. 수성랜드가 마땅해 보였다. 호텔은 많았다. 호텔은 밤에 정하기로 했다.
결혼식을 잘 치르고 수성랜드에 갔다. 가장 먼저 탄 놀이기구가 빙빙 도는 거였는데 머리가 어지럽고 구역질이 났다. 하지만 그것 빼고는 대체로 기분 좋게 신나게 놀았다. 다시 차에 올랐다. 호텔을 검색해 보고 있는데 남편이 앙코르 호텔 어떠냔다. 후기가 좋단다. 저녁으로 먹을 치킨과 김밥을 호텔로 배달시켜 놓고 호텔로 출발했다. 호텔에 짐을 풀고 밥을 먹고 근처 공원을 산책하고. 여기까지는 좋았는데. 호텔에 돌아와 애들이 잠을 안 자고 노는데 주하가 침대에 오르다 떨어졌다.
주하가 큰 소리로 운다. 아픈 건 이해하는데 밤 12시가 넘었는데 방이 떠나가라 계속 우니까 달래다 우리도 좀 지쳤다. 계속 울면 병원 데려간다고 겁을 주었다. 주하는 울다 지쳤는지 잠이 들긴 했는데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질 못한다. 남편이 하루종일 안고 다녔다.
화요일에 온종일 누워있더니 밤에 아빠가 돌아오자 일어나서 좀 걷고 가위질도 하더라. 그래서 걱정을 한시름 놓았는데 다음날 아침에 또 못 일어나길래 병원을 데려갔다.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쇄골 골절. 한 달간 8자 붕대를 하고 있으란다. 주하가 아프니 나도 아프다. 입맛이 전혀 없어서 절로 금식을 하게 되더라. 밥 한 숟갈을 떠넘기려 하면 구역질이 나더라.
병원을 다녀온 후에도 꼼짝도 안 하더니 금요일이 되자 드디어 일어나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장난감도 가지고 놀고 책도 읽어달라고 가져오고 밖으로 나가자고까지 한다. 힘이 난다. 신이 난다. 주하가 너무 예쁘다. 그간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사실은 기적이었음을.
딸이 아파도 엄마는 씩씩하게 희망을 가지고 별일 아닌듯 해야 하는데. 주하는 의연하게 뼈가 붙기를 잠잠히 기다리는데, 나는 얼마나 아프냐, 어디가 아프냐, 병원 가야 하는 것 아니냐, 왜 고개를 못 돌리냐, 왜 걷지를 못하냐 몇 번씩을 캐물으면서 청승맞게 눈물까지 흘리고. 주하가 다시 걸을 때까지 불안하고 걱정되는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왜 그렇게 내 인생에 가장 소중한 사람들(나, 남편, 딸)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지. 사람은 일곱 살 이전에 부모가 자기를 대하던 방식으로 평생을 산다더니 정말 그렇다. 이게 진짜 무서운 거구나. 아무리 안 그러려고 해도 어느새 보면 나를 자책하거나 남편을 원망하거나 딸을 질책하고 있다. 누구의 탓도 아닌데 자꾸만 범인을 찾고 있다. 다 엄마한테 배운 거다. 엄마도 윗세대에서 배웠겠지.
주하가 다치니까 속상해서 그렇다. 그리고 나 혼자 주하 간호하느라 너무 힘들어서 그렇다. 사고의 원인을 분석해서 다음에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하지만 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났단 말인가. 남편의 말을 듣지 말고 친정 엄마의 말을 들었어야 했나? 호텔을 가지 말았어야 했나? 주하가 침대에 못 올라가게 했어야 했나? 앞으로는 여행을 가지 말아야 하나?
나의 육아 모토는 원래 ‘Better a broken arm than a broken spirit.’였다. 모험 놀이터의 어머니 앨런 남작 부인이 한 말이라는데, 높은 데도 마음껏 올라가고 뛰고 뒹굴고 하는 거다. 그런데 막상 아이 팔이 부러지고 보니, 아니었다. 이 말이 한 아이를 온 마을이 키우던 시대에는 그럴 듯했을지 몰라도, 오늘날같이 독박 육아의 시대에는 끔찍한 말이다. 아이가 다치면 엄마가 간호를 도맡는다. 누구 하나 도와주는 이 없다. 거기다 동생까지 있으면? 워킹맘이라면? 물론 아이들의 뼈가 한 달이면 붙는다지만 그 기간 동안 아픔과 슬픔과 불안을 나눌 사람도 없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4살인데 침대를 못 올라가게 하진 않잖아!
근 일주일간 십년은 늙은 기분이다. 주하 쇄골 골절, 남편 매일 야근, 로비 타일 공사로 공동현관문 잠겨서 한번 나갔다 들어오려면 엄청 복잡, 거기다 생리까지 터짐. 하나만 터져도 지쳐 쓰러지는데 네 가지가 동시다발적으로 터지니까 정신을 못 차리겠네.
자꾸 후회가 된다. 대구만 안 갔어도!
주하가 얼른 나았으면 좋겠다.
난 한심한 쫄보 엄마다.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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